대구 봉덕신시장, 국밥 골목으로 들어가다
대구 남구 봉덕신시장에 갔습니다.
시장 입구 아치에 'Welcome to Bongdeong Market'이라고 쓰인, 딱 보면 아는 그런 재래시장입니다. 아케이드 아래로 옷가게와 정육점, 한의원이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국밥 냄새가 흘러나옵니다.
봉덕시장은 대구에서 알 만한 사람은 아는 돼지국밥 골목입니다. 좁은 골목 안에 국밥집이 여러 곳 붙어 있어요. 그중에서 제가 찾아간 곳은 김천식당입니다.

1. 왜 이 집인가 — 야구 명가의 국밥집
가게 앞에 서면 간판보다 현수막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박준현 (박석민 아들) — 2026 드래프트 전체 1순위 키움"
그 옆으로는 KBS 전국방송 '6시 내고향' 방영이라는 빨간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현수막 사진 속에는 세 사람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손자.
이 집 사장님이 박석민 코치의 어머니이자, 박준현 선수의 할머니입니다.
잠깐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박석민. 대구에서 나고 자라 대구고를 졸업하고 2004년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삼성에 입단했습니다. 2011~2014시즌 삼성이 정규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를 동시에 가져간 '삼성 왕조'의 중심 타자였죠. 2016년부터는 NC 다이노스에서 뛰었고, 은퇴 후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3군 육성 코치와 두산 베어스 타격코치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2025년 12월, 삼성 라이온즈 퓨처스(2군) 타격코치로 친정에 복귀했습니다.
박준현. 그 아들입니다. 천안북일고 우완 투수로 최고 시속 157km 강속구를 던져 메이저리그 구단들까지 관심을 보였던 고교 최대어입니다. 2025년 9월 17일, 역대 최다인 1,261명이 참가한 2026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키움 히어로즈에 전체 1순위로 지명됐습니다.
대구 토박이 야구 가족의 뿌리가 이 시장 국밥집이라는 겁니다.
가게 안에도 벽 한 면이 야구입니다. 박석민 선수 시절 NC 다이노스 '플레이어데이' 사인 포스터가 걸려 있고, 그 아래 손자의 드래프트 1위 현수막이 붙어 있습니다. 그 밑에는 "국물, 밥 서비스입니다 (1인 1식 기준)" 안내문과 영업시간 안내가 나란히 붙어 있고요.
할머니의 국밥집에 손자의 현수막이 걸린 풍경. 이거 하나만으로도 올 이유가 됩니다.


2. 30년 넘은 국밥집의 첫인상
야구를 빼고 봐도 이 집은 봉덕시장 국밥 골목에서 30년 이상 자리를 지켜온 노포입니다.
가게 입구부터가 말을 합니다. 스테인리스 쟁반이 탑처럼 쌓여 있고, 그 옆으로 '눌린고기', '삶은돼지고기', '돼지국밥' 글자가 큼직하게 붙어 있습니다. 안쪽으로는 고기를 삶는 솥이 걸려 있고, 바구니마다 삶은 고기가 수북합니다.
꾸민 곳이 아닙니다. 매일 고기를 삶아 파는 집의 얼굴입니다.
3. 순대국밥 — 국물이 안 보입니다
주문은 순대국밥과 돼지국밥 하나씩.
먼저 나온 순대국밥을 보고 웃었습니다. 국물이 안 보입니다.
과장이 아니라, 뚝배기 표면을 순대가 빈틈없이 덮고 있습니다. 그것도 얇게 썬 게 아니라 한 입에 다 안 들어갈 만큼 도톰하게 썬 찹쌀순대가 층층이 쌓여 있어요. 젓가락을 넣어 휘저어야 그제야 뽀얀 국물이 올라옵니다.
순대를 하나 건져 올리면 껍질이 팽팽하게 버티다가 이가 들어가는 순간 툭 터지고, 안에서 찹쌀과 선지가 뭉근하게 풀립니다. 시장 순대 특유의 쫀득하면서도 폭신한 그 식감입니다. 국물을 머금어서 퍽퍽할 틈이 없습니다.
국물은 뽀얗지만 무겁지 않습니다. 사골처럼 진하게 밀어붙이는 쪽이 아니라, 돼지 뼈를 오래 고아 낸 맑고 담백한 계열입니다. 잡내가 없어요. 이게 은근히 어려운 부분인데, 이 집은 깔끔하게 잡았습니다.


4. 돼지국밥 — 고기가 이렇게 들어가도 되나
돼지국밥은 또 다른 방식으로 놀랍니다.
돼지머리 부위를 중심으로 여러 부위의 고기가 들어가는데, 양이 진짜 많습니다. 살코기, 비계가 적당히 붙은 부위, 눌린고기까지 부위마다 식감이 전부 다릅니다. 어떤 건 결대로 부드럽게 찢어지고, 어떤 건 쫀득하게 씹히고, 또 어떤 건 젤라틴처럼 입에 감깁니다. 한 그릇 안에서 계속 다른 씹는 맛이 나오니까 지루할 틈이 없어요.
그 위에 송송 썬 대파가 수북하게, 그리고 가운데 후춧가루가 한 무더기 얹혀 나옵니다. 이걸 국물에 풀면 향이 확 올라옵니다.
5. 이 집의 진짜 특징 — 쌈장과 다대기가 '토핑'으로 올라온다
여기가 핵심입니다.
보통 국밥집은 다대기를 종지에 따로 주거나, 아예 국물에 풀어서 냅니다. 그런데 김천식당은 국밥 위에 쌈장(된장 양념)과 붉은 다대기를 나란히 얹어서 냅니다. 대파 위에 주황빛 쌈장 한 덩이, 새빨간 다대기 한 덩이가 토핑처럼 딱 올라와 있어요. 비주얼부터 확실히 다릅니다.
돼지국밥 다대기에 된장 양념을 쓰는 건 봉덕시장 국밥 골목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돼지 특유의 누린내를 잡기 위한 방식이죠. 실제로 먹어 보면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먹는 방법이 중요합니다. 한꺼번에 풀지 마세요.
- 먼저 국물부터 한 숟갈. 아무것도 안 섞인 원래 맛을 봐야 합니다. 맑고 담백합니다.
- 쌈장을 조금씩 풀어봅니다. 국물이 순간 구수하게 묵직해집니다. 된장의 발효된 감칠맛이 뽀얀 국물에 얹히면서 맛의 층이 하나 더 생깁니다. 돼지 냄새는 이 단계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 마지막에 다대기. 여기서 얼큰함이 올라옵니다. 매운맛이 앞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국물 뒤쪽에 깔리는 방식이라, 계속 떠먹게 됩니다.
한 그릇으로 세 가지 맛을 순서대로 먹는 셈입니다. 이거 은근히 재밌습니다. 저는 중간부터 쌈장만 더 넣어 먹었는데, 구수한 쪽이 취향이었습니다.
반찬은 깍두기, 양파절임, 마늘과 청양고추, 새우젓, 추가 다대기까지 한 쟁반에 나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국밥에 딱 필요한 것만 있습니다. 마늘 한 쪽에 고기 한 점 올려 먹으면 그게 또 정답이에요.
그리고 국물과 밥은 1인 1식 기준 리필 서비스입니다. 양이 이미 충분한데 서비스까지 붙습니다.
6. 정리하면
- 양: 국물이 안 보일 만큼 건더기가 많습니다. 소식하시는 분은 한 그릇 다 못 드십니다.
- 맛: 담백한 베이스에 쌈장·다대기로 직접 만들어 먹는 구조. 잡내 없습니다.
- 가성비: 한 그릇 10,000원. 요즘 국밥 물가를 생각하면 평균가인데, 들어간 고기 양과 국물·밥 리필까지 따지면 확실히 남는 장사입니다.
- 스토리: 삼성 왕조 주역의 어머니, 드래프트 1순위 투수의 할머니가 끓이는 국밥.
📍 김천식당 (봉덕신시장)
- 주소: 대구광역시 남구 대봉로 67-1 (봉덕신시장 내)
- 전화: 053-472-6918
- 영업시간: 오전 7시 ~ 오후 10시
- 휴무: 매주 화요일
- 메뉴: 돼지국밥·순대국밥 각 10,000원 / 곱창국밥 / 따로국밥 / 순대따로국밥 / 곱창따로국밥 / 수육(대·소) / 술국 / 행사용 주문고기 가격은 방문 시점 기준이며 변동될 수 있습니다.
- 특징: KBS '6시 내고향' 방영 / 국물·밥 리필 서비스(1인 1식 기준)
- 주차: 시장 내 별도 주차장 없음 — 인근 공영주차장 이용 권장
💡 TIP 세 가지
1. 아침 7시부터 엽니다. 해장하러 가기 딱 좋습니다.
2. 화요일 휴무입니다. 헛걸음 주의.
3. 행사용 고기는 관 단위 주문이 가능합니다. 모임 준비하시는 분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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