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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촉사 은진미륵

관촉사는 비사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은진미륵으로 유명하다. 해인사로 옮겨간 [목우자수심결], [몽산법어] 등의 판본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관촉사가 품은 가장 빼어난 보물은 단연 은진미륵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석불로 유명하지만 시민의 가슴에는 가정의 안녕과 행복을 염원하는 미륵불로 언제나 인자한 미소로 서 있다. 논산에서 제일 먼저 가볼 수 있는 곳이 은진미륵으로 유명한 관촉사다.

들판에 젖무덤 같이 소담하게 부푼 반야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관촉사는 시내에서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다. 논산시에서 관촉사에 이르는 관촉로 주변으로 벚꽃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매년 4월경 꽃이 만개할 때면 벚꽃터널을 이루는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해 가족이나 연인들의 산책코스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2. 탑정호와 출렁다리

충남에서 두번째로 넓은 호수로, 대둔산의 물줄기를 담아내는 탑정호는 물이 맑기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감상할 수 있고, 각종 수상 레포츠도 즐길 수 있다. 눈을 뜨기 조차 힘들만큼 강렬한 빛속에서 논산시 한가운데에 자리한 탑정호는 옥토의 젖줄이다.

햇살은 따스함과 포근함으로 세상을 감싸지만 그 눈부심으로 가끔은 인간을 움츠리게 만든다. 그러나 그 태양을 향해 당당히 마주선 곳이 있다. 거기가 바로 탑정호이다. 수려한 대둔산의 물줄기를 담아내는 탑정호는 물이 맑기로도 유명하다. 그 곳에 가면 계절과 상관없이 근심이 풀어진다. 산은 강을 품고 강은 들을 품고 살지만 호수는 산과 강과 들을 품고 산다. 바다만큼이나 넓고 하늘만큼이나 깊은 호수가 바로 탑정호다.

 

3. 대둔산 수락계곡

수려한 자연경관을 지닌 대둔산은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며, 계곡과 단풍으로 유명하다. 3개 시.군에 걸쳐있으며, 논산 방면은 관광객보다는 등산객들에게 사랑받는다. 대둔산은 논산시를 비롯해 금산군과 전라북도 완주군이 경계를 이루면서 넓게 분포되어 있다.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며 기암괴석 등 웅장한 형태를 지닌 대둔산을 옛부터 절찬을 받을 만큼 수려한 자연경관을 지닌 명산이다. 대둔산은 논산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고 계곡과 단풍으로 유명하다. 그 중 군지계곡과 수락폭포는 소금강의 진수를 보여준다. 산은 날씨와 계절에 관계없이 그때 그 자리마다 아름답다는 것을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안다.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는 대둔산은 더욱 그렇다. 대둔산은 대개 전북 운주 쪽을 떠올리게 되는데 대둔산은 충남의 논산과 금산, 전북의 완주 등 3개 시군에 속해 있다. 면적으로는 논산이 가장 넓다.

논산쪽은 관광객보다 등산객에게 각광받는 편이다. 봄은 파스텔 같은 색조따라 산새 소리가 계곡을 어지럽게 하고, 한 여름에는 한기를 느낄 정도의 찬바람으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다가, 가을에서 겨울까지는 등산객들의 행렬이 이어지는 산이다.

 

4. 계백장군 유적지

계백장군의 유적지로, 최후의 결전장이었던 황산벌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계백장군의 묘소가 있고, 사당인 충장사가 세워져 매년 4월에 제향이 올려진다. 예로부터 논산은 삼남지방과 기호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길목이었기에 황산벌전투는 우연이 아니다.

계백장군 또한 이곳 황산벌에 오천결사대와 함께 잠들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제와 신라 “우국충정”의 대 격전, 황산벌 전투 계백(階白 ; ? -660)은 백제의 장군이다. 554년 성왕(聖王)이 관산성(管山城)에서 전사한 뒤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다.

641년 의자왕(義滋王)의 즉위이래 백제는 고구려와 제휴하면서 신라를 자주 공격했다. 그러나 고립된 신라가 당나라와 협력하여 고구려, 백제 두 나라를 노리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결국 660년 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의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炭峴)과 백강(白江)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의자왕은 계백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했다. 계백은 죽기를 각오하고 출전하여 1인당 100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4번을 싸워 이겼으나 중과부적으로 끝내 오천결사대와 함께 장열히 최후를 마쳤다.

 

5. 쌍계사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과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을 품고 있다. 유명한 사적이 없어서 이름난 사찰은 아니지만, 절과 관련되어 계승되는 전설이 아주 많다.

산길 끝에 암자가 있듯 명산에는 대찰이 있기 마련이다. 쌍계사 또한 대둔산 줄기의 불명산 기슭에 숨어 있는 사찰이다. 절을 애워싼 산세가 범상치 않은 곳에 위치한 쌍계사는 인적은 없고, 산새 소리와 풍경소리만이 서로의 음을 조절하며 파장을 즐길 뿐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한 멋이 가득한 쌍계사는 찾아가는 길이 멋스러운 사찰이다. 특히 이 절의 대웅전은 꽂무늬 창살로 유명하며, 꽃무늬는 연꽃, 모란을 비롯해 6가지 무늬로 새겨 색을 칠했는데 섬세하고 정교한 솜씨를 발견할 수 있다. 꽃무늬 창살로 유명한 쌍계사는 건립의 설화부터 신비하다.

역사에는 고려 초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건립한 혜명스님이 창건했다고 하지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옥황상제의 아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절터를 잡아 건립했다고 한다.

 

6. 개태사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한 기념으로 창건되었다. 태조의 영정을 모시던 진전(進展)이 있었으며, 고려 말기가 되기 전까지는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곳이다. 논산 대전간 국도를 따라 연산사거리를 지나 오르막을 꺾어 내리다 오른쪽으로 마치 한옥의 지붕처럼 길게 뻗은 산이 보이는데 이 산이 바로 천호산이다.

이곳 천호산 자락에 있는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지은 개국사찰이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절이지만 과거 큰 사찰이었으나 왜구의 침략으로 모두 사라졌다가 근대에 들어 재건되었다.

병풍처럼 생긴 천호산 아래 자리한 개태사는 연산검문소를 지나 대전 방면으로 1㎞쯤 가다보면 우측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절이 보인다. 이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봉안한 어진전이 있다. 고려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호국사찰이면서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항상 이곳에서 하늘에 기원을 올리고 나라의 평온을 소원했다고 한다. 대웅전에는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멸하고 마침내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조성했다는 삼존석불이 있다.

 

7. 강경포구와 근대역사거리

선녀들도 반할만큼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강경 제일의 조망을 지니고 있고, 남쪽으로는 강경 읍내, 북쪽으로는 금강 물줄기가 보인다. 유순한 금강이 흐르고, 아담한 옥녀봉과 채운산이 알맞은 거리를 두고 마주한 사이에 올망졸망 읍내가 보이는 강경! 「택리지」저자 이중환은 일찍이 강경의 풍물과 경치에 빠져 이곳에 살면서「택리지」를 집필하였다고 한다.

달 밝은 보름날 하늘나라 선녀들이 이 산마루에 내려와 경치의 아름다움을 즐겼고 맑은 강물에 목욕을 하며 놀았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강경에 가거든 젓갈시장을 들러 보고 꼭 옥녀봉에 올라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8. 노성산성과 명재고택

노성산성은 정상부분을 돌러 둘러쌓은 성으로, 연산에 있는 황산성과 함께 신라에 대한 백제의 마지막 방어기지이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주요 방어지역이었다. 노성산에는 노성산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숲이 있고 새가 있고 바람이 있고 그 아래에 산성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산성에는 벌레가 살고 이끼가 살고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쉰다. 논산은 산이 많지 않으면서도 산성이 많은 곳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 논산이 풍요로운 고장이라서 예부터 이 땅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방어와 공격의 수단으로 산성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가장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노성산성이다.

백제시대에 축성된 노성산성은 자연적인 지세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약1km를 석축으로 거의 완벽하게 쌓은 성지이고, 동쪽면, 북쪽면, 서쪽면은 돌을 네모 모양으로 다듬어 쌓았다.

「신증둥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성 둘레는 590m, 높이 2.4m이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는 장수의 지휘대로 보이는 터(장대지)가 있으며 동쪽벽으로 조금 내려오면 봉화를 올리던 봉수대로 보이는 곳이 있다.

성 안에는 4개의 우물이 있는데 지금도 사용하고 있고 토기, 기와 같은 여러 유물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연산에 있는 황산성과 함께 백제와 신라가 서로 마주했던 마지막 방어지에 해당하는 산성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사용한 주요 방어지역이었던 곳이다.

 

9. 세계유산 돈암서원

돈암서원은 사계 김장생(1548~1631)의 강학 기반을 배경으로 건립된 서원이다. 황강 김계휘가 건립한 정회당과 김장생이 건립한 양성당에서 수학한 김장생의 제자들이 후에 스승을 추모하며 기리기 위하여 돈암서원을 건립하였다.

원래 서원은 현재의 위치보다 서북쪽으로 약 1.5㎞ 떨어진 하임리 숲말로 연산천에 가까웠는데, 수해를 피하여 1880년(고종 17)에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서원이 처음 자리잡은 숲말 산기슭의 큰 바위를 돈암이라고 불렀는데, 서원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참고로 돈암의 돈은 원래 ‘둔(遯)’자로 주역의 둔괘(遯卦)의 의미와 관련이 깊으며, 주자가 만년에 사용한 둔옹(遯翁)이라는 호를 가탁했으리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돈암서원은 1634년(인조12년)에 창건되었으며, 김장생과 그의 아들 신독재 김집의 문하에서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을 비롯하여 이유태, 유계, 윤원거, 윤문거, 윤선거 등 수많은 명유(名儒)들을 배출하였다.

이들의 활동으로 돈암서원은 호서지역의 산림과 예학의 산실이자 본거지로서 17세기 전 기간 동안 충청도 서인계의 수(首)서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서원의 혁파를 위해 전국의 47개소를 제외한 600여개소의 서원을 철폐하였는데, 논산의 서원중 연산의 돈암서원과 광석의 노강서원만이 철폐되지 않고 남았다.

 

10. 선샤인랜드

선샤인랜드는 서바이벌 체험장, 밀리터리 체험관, 드라마 · 영화 세트장을 관람 및 체험을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눈으로만 보는 단순한 전시관이 아니라 방문객들이 직접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서바이벌 체험장은 온 몸으로 전해지는 생생한 전투 현장을 느낄 수 있는 체험이다.

밀리터리 체험관의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스크린 사격, 실내 사격, VR체험이 있다. 드라마 · 영화 세트장은 한국 전쟁이 끝난 195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생생한 역사 현장을 제공한다.

 

11. 종학당과 한국유교문화진흥원

파평윤씨 문중의 자녀교육을 위한 곳으로 문중의 자녀와 내외척, 처가의 자녀들이 모여 합숙교육을 받았다. 초등반용 종학당과 고등반용 정수루, 기숙사가 있다. 파평 윤씨 문중의 자녀와 내외척, 처가의 자녀들이 모여 합숙교육을 받던 교육도장이다. 인조 21년(1643) 윤순거가 문중의 자녀교육을 위해 세운 후 종약(宗約)을 제정하였다.

화재로 인해 없어졌다가 1970년 윤정규가 지금의 종학당을 다시 지었다.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가운데 1칸은 대청을 겸한 트인 마루를 두었고 양쪽 칸은 방을 설치하였다. 1910년까지 운영된 종학당은 일반 서원이나 서당과는 다르게 교육목표와 교육과정을 두고 학칙도 정하여 시행하였다.

종학당은 조선 인조 21년(1643) 윤순거가 문중의 자녀교육을 위해 건립하고 종약(宗約)을 제정하여 종중의 자녀와 문중의 내외척, 처가의 자녀들이 모여 합숙교육을 받던 교육도장(敎育道場)이었다.

 

#출처. 논산시청 홈페이지 https://nonsan.go.kr/kor/index.html

 

논산시

논산시 수해복구에 전직원 봉사활동 논산시 공무원들이 주말을 반납하고 수해지역으로 향해 복구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지난14일부터 쏟아진 호우로 인해 시설 농경지 피해를 크게 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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