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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림지

삼한시대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저수지로 본래 ‘임지’라 하였습니다.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개정할 때 제천을 ‘의원현’ 또는 ‘의천’이라 하였는데 그 첫 글자인 ‘의’자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축조된 명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구전에는 신라 진흥왕(540~575) 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871m)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이 못의 시초라 전해집니다.

 

2. 박달재

「울고 넘는 박달재」라는 대중가요로 전국에 널리 알려진 박달재는 조선 중기 박달과 금봉의 슬픈 사랑이야기로도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예전에는 충주와 연결된 유일한 길이어서 통행량이 많았으나, 현재는 통행의 편의성이 좋아져 예전만큼 교통량이 많지 않습니다.

굽이굽이 굽어있는 이 고개는 돌아가는 묘미가 있는 것인지, 최근에는 새로운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을 받고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3. 월악산

월악산은 1984년 17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소백산을 지나 속리산으로 연결되는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위치한 산으로, 뛰어난 경관과 아름다운 계곡의 정취를 간직한 곳이 많아, “제2의 금강산”, “동양의 알프스” 등 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는 산입니다.

월악산은 독특하게도 동서남북 네 방향 모두 산행 시작점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시작점이 있는 만큼, 보는 위치에 따라 얼굴이 다양하며, 사계절 내내 다양한 풍경을 다채롭게 즐겨볼 수 있습니다.

특히 산세가 험준하고 기암절벽이 치솟아 올랐던 월악산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신성스러운 정기를 담고 있다고 하여 성역화 되어, 주봉우리를 영봉(靈峯)이라 칭하며 중히 여겼다고 합니다.

(산악지형인 우리나라의 산 중에 주봉의 이름이 영봉인 것은 남한의 월악산, 북한의 백두산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4. 청풍 문화재단지

청풍호는 충주댐 건설에 따라 생겨난 호수로, 충주댐 건설로 인해 제천 인근 3개 시군의 11개면 101개 리,동, 7천여가구, 4만여명의 인구가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총수몰면적 약50%가 제천지역을 차지하고 있어, 제천시에서는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을 기억하고, 수몰지구 보물과 문화재 등을 보전하여 수몰민들의 고향을 잃은 애환을 달래기 위해 청풍문화재단지를 조성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5. 금수산

퇴계 이황 선생도 감탄한 금수산 제천시와 단양군의 경계, 월악산 국립공원 북단에 위치한 금수산(錦繡山)은 해발 1,019m 수려한 맵시를 가진 산입니다.

정상을 기점으로 북으로는 신선봉과 함께 능강계곡이 시야에 들어오며, 남쪽으로는 월악산과 함께 백두대간이 아련히 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그 아래로는 청풍호반과 문화재단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쾌속 유람선의 물길이 빛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대문인이었던 퇴계이황 선생은 금수산의 단풍이 마치 비단으로 수놓은 듯 아름답다고 하여 감탄, 산 이름을 바꾸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6. 용하구곡

용하구곡(用夏九曲)은 의당 박세화 선생이 일제의 만행에 비분강개하여 주자 영정을 모시고 덕산면으로 들어와 후학을 양성하다, 1898년 주자의 무이구곡시 중 4자씩을 취해 국운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며 선경에 새긴 글귀를 말합니다.

용하(用夏)는 맹자의 글에서 따온 문구로 고대 태평성대를 이뤘던 하나라의 문화를 발원하자는 의미를 담은 용어이다.

조선 말 자주성을 상실한 세태를 비판하며 자주성을 찾고 오랑캐(일제)를 물리쳐 국운을 회복하자는 소망을 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의당 박세화 선생은 국운의 쇄락을 탄식하며 수차례 조정의 추천을 물리고 학문에 전념하였으나,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으로 일제의 내정간섭이 심화되자 거의(의병을 일으킴)를 꾀하던 중 밀고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용하구곡에 선비의 단심과 국운의 안녕을 선경에 새긴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제천 남현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치열한 교전 끝에 청풍에서 붙잡혔으며,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이 강탈되자 절식, 23일만에 순국하셨습니다.

 

7. 송계계곡

월악산(1,094m)은 한수면 송계리에 자리하고 있는 국립공원입니다.

월악산은 제천10경의 제3경을 자리할 만큼 풍광이 뛰어난 국내 5대 명산이기도 합니다.

인근 선조들은 이 안에 있는 아름다운 송계리의 계곡들을 "송계8경"이라 칭하며 그 풍광의 아름다움을 극찬했습니다.

송계8경은 팔랑소(八娘沼), 와룡대(臥龍臺), 망폭대(望瀑臺), 수경대(水鏡臺), 학소대(鶴巢臺), 자연대(自然臺), 월광폭포(月光瀑布), 월악영봉(月岳靈峰)을 말합니다.

영봉을 위시해 근엄하게 펼쳐진 월악산 자락에 송계8경의 계곡들이 그 핏줄처럼 아름다움을 배가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계곡물이 얼음처럼 차가워 무더운 여름철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많은 피서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며, 인근 월악산 영봉과 덕주사가 있어 자연의 아름다움과 문화적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관광지 입니다.

 

8. 옥순봉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옥순봉(玉筍峯)은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 위치하며, 대한민국 제48호 명승지로, 제천10경 중 제8경에 속하는 곳입니다.

옥순봉휴게소에서 전망대까지 5분정도 올라가면 그 수려한 산세와 힘찬 봉우리들을 보며 절로 감탄사가 나오기도 하죠.

특히 옥순봉은 예부터 아름다운 경치로 퇴계 이황부터 단원 김홍도 등 많은 문인, 화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실례로 퇴계 이황선생이 단양군수로 재직하며 청풍군수에게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달라고 청했지만 거절당하여, 옥순봉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問:단양의 관문)이라고 새긴 일화는 꽤 유명합니다.

학문이 깊었던 퇴계선생이셨던 만큼 옥순봉의 진가를 그때부터 알아보시지 않았을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단원 김홍도 선생도 청풍의 남한강가를 수없이 거닐며 실경산수 화법으로 「옥순봉도」를 화첩에 담으셨는데요. 수직의 봉우리들이 하늘을 떠받치듯 구성되어 그 신비로움이 배가된 모습입니다.(현재 호암미술관 소장)

 

9. 탁사정

원주에서 제천으로 들어오는 국도변에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 잡은 탁사정은 조선 선조 19년(1568) 제주 수사로 있던 임응룡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해송 여덟 그루를 가져와 '팔송'이라 명명하였고, 그의 아들 임희운이 정자를 짓고 '팔송정'이라 칭했습니다.

이후 허물어진 팔송정을 후손 임윤근이 다시 세웠고, 옥파 원균상이 탁사정(濯斯亭)이라 이름지었다고 합니다. 6.25 전쟁으로 불에 탄 것을 1957년에 재건, 제천 10경 정비사업으로 제천시에서 보수하였습니다.

 

10. 배론성지

‘배론’이라는 명칭은 지형이 마치 배 밑바닥과 같은 모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좁은 입구에 경사가 비스듬히 있어 안쪽 지형이 잘 보이지 않는 특징과 동시에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원주, 충주 등 여러 도시와 연결되어 있는 산길이 많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천주교는 박해당하던 종교였기에 신자들은 이렇게 요새같은 곳에서 자신들의 신앙촌을 구성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한편 배론성지는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천주교 정신을 이어온 곳으로써, ‘국내 최초의 신학당’,‘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묘소’,‘황사영 백서 토굴’등 국내 천주교 역사의 중요한 페이지를 채우고 있는 신앙유산으로 가득합니다. 배론성지의 유명한 단풍절경과 함께 그 당시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귀한 목숨을 내어 준 옛 성인들의 숭고한 넋을 생각하며 엄숙한 마음을 담아 성지를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제천시청 홈페이지 https://www.jecheon.go.kr/

 

제천시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www.jecheo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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