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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주팔봉

왕의 꿈에 나타난 수주팔봉 수주팔봉을풀어쓰면‘물위에선여덟개봉우리’다.

달천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암봉은 송곳바위, 중바위, 칼바위 등 각기 이름도 있다. 가장 높은 칼바위는 493m에 이른다.

파노라마를 펼치듯 고개를 돌려가며 봐야 수주팔봉 전체를 가늠할 수 있다. 마치 대형 스크린 앞에 선 듯 깎아지른 암봉들이 그려내는 장관에 압도된다.

 

2. 만수계곡

만수계곡을 걸으면 만수무강한다 만수계곡은 월악산국립공원 포암산과 만수봉 사이에 자리한 작은 계곡이다.

물 맑기로 소문난 송계계곡의 최상류 물줄기 중 하나로, 푸른 숲 아래를 지나서 동달천을 만나 한 몸이 되어 흐르다 송계계곡이 된다.

그래서인지 계곡을 한 바퀴 돌며 숲과 물의 정기를 들이마시면 만수무강한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계곡의 이름이 ‘만수’인 것도 그 때문이라고. 계곡 이름엔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에 만수봉 아래 만수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 이름을 따서 산봉우리도 만수봉으로 불렀고, 계곡 이름도 만수계곡이 됐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계곡 이름의 기원이든 이곳을 걸으며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져서 만수(萬壽)를 누릴 듯하다.

 

3. 수안보 온천

왕의 온천이며 백성의 온천 수안보는 ‘물안비’라는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이 있다.

온천수가 솟아나는 곳을 ‘물이 솟는 보의 안쪽 마을’이라는 뜻에서 ‘물안보’ ‘물안비’라고 부르다가 한자로 바뀌면서 수안보가 되었다.

수안보 온천에 대한 기록은 조선 문종 때 완성된 《고려사》에서 맨 처음 볼 수 있다. 1018년(현종 9)상모현에 온천이 있다는 내용이다. 조선 후기 헌종 때 학자인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연풍현 수안보 땅에 온수가 있는데, 수질이 좋아 병자들이 많이 몰려든다. 이 물 역시 냉열이원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다양한 역사를 품은 수안보의 시대적 의미는 《조선왕조실록》《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등 수많은 고문헌에서도 찾을 수 있다.

 

4. 충주 미륵 대원지

미륵대원, 1000년 잠에서 깨다 1976년, 충주 미륵대원지(사적 317호) 절터의 집을 옮기는 과정에서 석물이 나왔다.

미륵대원이 1000년 잠에서 깨어나는 찰나였다. 그 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미륵댕이’라 부르는 논밭이고 집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한 수행자가 암자를 짓고 미륵불에 제를 올렸으나, 미륵의 일부만 보이는 상태였다.

석등도 대부분 땅에 묻혀 있었다. 미륵대원지는 1977~1993년에 발굴되었다. 1차 발굴에서 ‘명창3년 대원사 주지 승원명(明昌三年大院寺住持僧元明)’이라 적힌 기와가 나왔다.

사찰 이름이 대원사라는 게 밝혀졌다. 4차 발굴 때는 동쪽 언덕에서 원(院)이나 역지(驛址), 군사시설로 볼 수 있는 흔적을 발견했다.《삼국유사》 〈왕력〉편에 적힌 ‘계립령금미륵대원동령시야’의 미륵대원이었다. 사찰인 대원사와 관리들의 숙소 격인 미륵대원이 유기적으로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5. 하늘재

위로와 평안의 하늘길 미륵대원을 벗어나니 은행나무가 좌우로 늘어섰다. 가을에는 단풍이 노랗게 물드는 길이다.

오른쪽 너른 터는 옛 병영으로 쓰인 원의 터다. 미륵대원지가 단순한 원이 아니라 군사적 요충이었음을 덧붙 인다.

은행나무 길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재 표석이 나온다. 왼쪽으로 들어서면 하늘재다. 도로 대각선 맞은편에는 충주 미륵대원지 삼층석탑(충북유형문화재 33호)도 있다.

 

6. 충주 탄금 공원

분주한 여행길에 휴식 같은 시간을 보내려면 충주탄금공원에 가보자.

그곳에는 격투의 기술을 넘어선 수련과 수양으로서 무예가 있고, 오래된 거목과 푸른 잔디밭이 남한강의 잔잔한 물줄기와 어우러진 자연이 있다.금공원은 세계무술박물관, 야외공연장, 연못과 물레방아, 수석공원, 돌미로원등으로 구성된다. 공원 곳곳에 있는 거대한 고목과 넓고 푸른 잔디밭이 고즈넉한 남한강과 어우러지는 풍경이 충주 사람들은 물론, 여행자의 발걸음도 머물게 한다. 충주에 세계무술박물관이 있는 것은 택견 때문이다. 충주는 중요무형문화재 76호 택견의 고장으로, 택견의 계보를 잇는 송덕기, 신한승 등이 1970년대 충주에 터를 잡고 택견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1983년 택견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송덕기와 신한승은 초대 예능 보유자가 됐다. 송덕기는 신한승의 스승이며, 신한승의 제자 정경화가 2대 택견 예능 보유자로 지정됐다.

 

7. 탄금대

탄금대는 우륵이 가야금을 탄 곳이라고 후대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신라시대 낭성이 충주의 탄금대라고 밝혔다.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한 곳, 조선 신립장군이 왜적을 행해 활 시위를 당긴 곳이 열두대라는 곳이다. 열두대는 강에 솟은 바위 절벽 꼭대기로 탄금정 아래 계단을 내려가면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와 너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달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지점 너른 강이 고즈넉하다. 강에 솟은 절벽 위에서 솔숲을 울리고 강물 위로 내려앉은 1400여 년 전 가야금 곡조는 우륵의 것이었다.

그날도 새가 날고, 오늘처럼 노을이 붉게 물들었으리라. 우륵이 가야금을 탔다고 해서 후세 사람들은 그곳을 탄금대라고 불렀다. 1000여 년 뒤 조선 장군 신립은 탄금대에서 왜적을 향해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 8000여 군사의 붉은 피로 물든 강물 위로 노을은 하염없이 드리웠겠지. 탄금대에 가면 끝나지 않은 현의 노래가 노을로 피어난다.

 

8. 중앙탑사적공원과 충주박물관

중원의 상징이던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이 위치한 공원이다. 1992년 사적공원으로 변모한 이곳은 남한강을 품고 있어 경관 또한 훌륭하다. 격전의 전장 중원은 아득히 먼 이야기다. 이제는 그 중심에 아늑한 휴식이 자리한다.

 

9. 탄금호 국제조정경기장

풍경만으로 대하던 남한강 조정 보트에 몸을 싣는다.

그 옛날 떼몰이꾼처럼 노를 저어 앞으로 나간다. 다만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마음을 맞춰 내는 물 위의 걸음이다. 누군가에게는 ‘무한 도전’의 하나일까. 충주에서 즐기는 특별한 땀과 바람의 체험이다.

 

10. 충주고구려비전시관

충주는 계립령과 죽령, 남한강 등이 있어 육로와 수로의 요지였다. 무기와 생활 도구는 물론, 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질 좋은 철이 생산됐다. 충주를 손에 넣는 나라가 삼국 통일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셈이었다.

고구려는 70년 넘게 충주를 지배했으나 신라에게 빼앗겼고, 신라가 마침내 삼국을 통일했다. 고구려의 충주 점령을 상징하는 충주 고구려비가 강한 나라 고구려의 기상을 품고 충주 땅에 서 있다.

 

11. 충주 고구려 천문과학관

옛날에는 고개 젖혀 하늘을 올려다봤다. 쨍쨍 뜬 해도 보고, 낮달도 보고, 밤이 되면 별도 보고, 별자리도 그렸다.

밤하늘에강처럼 흐르는 은하수는 참 신기했다. 지금도 그 별들은 그렇게 빛나고 있겠지?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에 가면 별을 헤던 추억이 별과 함께 빛난다.

 

# 출처. 충주시청 홈페이지 https://www.chungju.go.kr/

 

충주시청

 

www.chungj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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